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15 광복 (문단 편집) == 상세 == [[광복]]은 일본의 수탈로 인하여 도탄에 빠진 [[한민족|조선민족]]을 일시적으로 구원했으나 곧 이이서 [[소련]]과 [[미국]]의 점령통치를 받게 되었다. 다만 이 점령통치는 한반도에서 일본군을 무장해제시켜서 일본 제국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한반도에 새로운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 당시를 '''해방'''으로 1945년의 해방과 1948년 8월 15일 독립정부 수립을 묶어서 '''광복'''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복절]]을 '''대한민국 독립한 날'''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지만 1945년 8월 15일은 한민족이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된 날이고 미군정 체제가 종료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져서 외국의 통치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한 날은 1948년 8월 15일로 연도가 다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양력 [[8월 15일]]을 '''[[광복절]]'''로 지정하였으며 [[북한]]에서도 '''해방절'''이라 하여 이날을 기리고 있다.[* 8.15 광복을 '8.15 해방'이라고도 부르는데 한국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광복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한민족만의 힘으로 쟁취한 게 아니라 [[연합국]]의 도움으로 된 측면이 있기에 (미국과 소련의 연합군에 의한) 해방이 더 알맞는 용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문서와 [[소련 붕괴]] 이후 소련의 기밀문서들이 정확하게 공개되면서 특정 시기, 외국의 특정 정부만을 위한 '해방' 대신 '광복'이라는 표현이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한 모든 기간을 포괄하는 역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인의 민족자결적 의미를 담기에 더 적절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즉 '''광복'''이라는 표현이 역사성과 민족성을 반영한 표현이다.] [[일본]]에서는 이날을 '''종전기념일'''이라고 기리고 있다.[* [[1984년]]에 "전몰자를 추도하고 평화를 기념하는 날" 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여전히 일반인들은 종전기념일이라고 부른다.] [[일본 제국]]이 정식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한 날은 [[1945년]] '''[[9월 2일]]'''이며 실제로는 [[천황]]이 서명한 것이 아니라 천황 및 [[일본 정부]], [[대본영]]의 명에 따라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 [[윤봉길]]의 의거 때문에 다리 한쪽을 잃어 절뚝거리며 갑판에 올라 서명했다.]와 육군참모총장 우메즈 요시지로가 서명했다. [[1948년]]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도 8.15 광복의 3주년 날짜로 맞추었고 [[1974년]] [[8월 15일]] 역사적인 [[대한민국]]의 첫 [[지하철]]인 [[서울 지하철 1호선]]([[종로선]]) 개통식이 이날 개최된 것을 보면[* 하지만 이날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는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광복절]] 행사에 합창단원으로 참석했던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 2학년 장봉화 양도 억울하게 사망했다.] 이날이 얼마나 의미있게 쓰였고 지금도 쓰이고 있는지는 분명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